머리로는 알고 있었어요.
내 아이가 느리다는 것을.
그런데 머리로 아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달랐어요.
친척 모임이 두려웠어요
봄이에게는 동갑 사촌여동생이 있어요.
친척 모임에서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너졌어요.
사촌여동생은 어른들에게 다가가서 인사도 하고, 물어보는 말에 또박또박 대답도 했어요. 자연스럽게 상호작용을 했어요.
봄이는 달랐어요.
다른 사람에게 관심도 없고, 누가 말을 걸어도 반향어만 중얼거렸어요.
말을 건 사람이 되려 흠칫 놀라며 애써 말을 수습하는 모습이었어요.
눈앞에서 너무 생생하게 비교되는 모습이 너무 속상했어요.
거기에 눈치 없는 어른들이 한마디씩 보탰어요.
누구는 참 똘똘하네, 봄이도 곧 할 거다, 여자아이가 원래 빠르다.
속이 더 쓰렸어요.
집에 돌아오는 길
친척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봄이를 바라봤어요.
뭔가 암담한 느낌이 들었어요.
봄이아빠한테 힘없이 중얼거렸어요.
"나는 평생 이렇게 봄이 뒷치닥거리를 하면서 살아야 하는 건가봐.."
평생 변하지 않는 아이를 내가 평생 품어야 할 것 같은 불안과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왔어요.
그날 많이 울었어요.
갭이 점점 커질수록
치료에 돈과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데, 일반 정상발달 아이들은 너무도 쉽게 배우고 다음 단계로 가버렸어요.
그 갭이 점점 커질수록 마음이 더 불안했어요.
지금 이렇게 노력해도 따라가기 힘든데, 나중에는 아예 시도도 못할 만큼 차이가 커져서 영 다른 세상으로 가버릴까봐.
나와 봄이는 이렇게 덩그러니, 노력을 해도 안 되는 세상에 살게 될까봐.
아무리 아이의 속도는 다르다, 받아들여라 해도..일반 아이들처럼 해줬으면 하는 욕심을 쉽게 버리기 힘들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어요
깊은 우울로 바닥을 치고 나서, 오히려 이상한 감정이 들었어요.
이렇게 해도 안 되는 거보다. 하고 툭 놓아지는 날이 있었어요.
그냥 어쩔 수 없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날 봄이의 치료 시간에 선생님이 신나서 뛰어오셨어요.
"어머니, 봄이가 이제 이런 반응을 새로 했어요!"
그전에는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죠, 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날은 달랐어요.
어, 진짜 새로운 걸 하네. 변했네.
그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바닥을 치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봄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는 게.
남들의 뒷소리는 내 마음이 하는 말이었어요
그리고 알게 된 것이 있어요.
남들이 뒷소리 한다고 느꼈던 것들은 사실 내 마음이 하는 말이었어요.
나의 걱정과 자격지심이었어요.
"봄이가 조금 느려요.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내가 먼저 말하게 되면서 알게 됐어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실체없는 말에 휘둘려서 그냥 나만 너무 의식해서 나와 봄이를 힘들게 하고 있었던 거예요.
남의 아이는 남의 아이고, 내 아이는 봄이니까.
봄이도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해도 해도 안 되는 부분을 완전히 체념했을 때, 봄이가 되려 잘하는 모습이 온전히 보이기 시작했어요.
조금 느려도 꾸준히 착실히 올라오는 걸 알게 됐을 때. 봄이도 자란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내 마음이 안정되니 봄이도 불안이 줄어드는 게 보였어요.
잘한다고 하니 진짜로 더 잘하기 시작했어요.
같이 커나가야 한다는 것을, 돌고 돌아 알게 됐어요.
아이의 속도를 인정한다는 게 포기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제대로 보기 시작하는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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